발해가 멸망하게 된 이유는 뭘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 때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번창했던 나라인데 왜
멸망하게 된 것인지, 그렇게 정리해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발해의 멸망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발생한 결과로,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내부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으나, 10세기 초 거란(契丹)족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 발해의 멸망에는 외부 세력의 침략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문제, 외교적 고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발해는 최종적으로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이끄는 거란 군대에 의해 926년에 멸망하고 만다.
첫째, 발해의 멸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외부 요인은 거란의 침공이었다. 발해는 중국 북방의 강력한 유목 민족들과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는데, 특히 거란족의 세력이 점차 강대해지면서 발해는 점차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발해 멸망 직전 거란은 야율아보기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10세기 초에는 중국의 당나라와 그 외 북방 민족들을 압박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발해는 이러한 거란의 확장에 대응할 군사적 준비가 미흡했고, 특히 내부적 정치 혼란으로 인해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926년 야율아보기의 대대적인 침공이 발해의 수도 상경(上京)을 함락시키면서 발해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둘째, 발해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도 멸망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발해는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유지했지만, 왕조 말기에 이르러 권력 다툼과 내부 분열이 발생하면서 국가의 통합력이 약화되었다. 발해는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였으며, 이는 내부적인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지배층 내부에서도 권력 투쟁이 빈번했다. 특히 발해 말기에는 왕위 계승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왕실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는 중앙 권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 세력의 반발이 심해졌고, 이는 발해가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셋째, 발해의 외교적 고립 역시 멸망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발해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당의 멸망 이후 점차 외교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당나라와 발해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발해는 이를 바탕으로 중원 문화와의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나 907년 당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 대륙은 혼란스러운 5대 10국 시대로 접어들었고, 발해는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발해는 신흥 강국인 거란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는 발해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했다. 또한 신라와의 관계도 악화되어, 남방에서의 외교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외교적 고립은 발해가 외부의 침략에 대응할 동맹을 찾지 못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거란의 침공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넷째, 발해의 경제적 문제도 멸망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경제적 거점이었으며, 중국, 일본, 그리고 북방의 여러 유목 민족들과 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발해 말기에 들어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었다. 특히 기후 변화나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 생산량 감소, 그리고 상업 활동의 위축 등이 발해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켰다. 경제적 기반이 약해지면서 발해는 군사력 유지와 행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결국 외부 세력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은 내부의 불만을 증가시켰고, 이는 정치적 불안정과 맞물려 국가 전반의 체제가 흔들리게 했다.
결론적으로, 발해의 멸망은 외부 세력의 침공, 내부적 정치 불안정, 외교적 고립,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발해는 한때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국가로 군림했으나,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10세기 초에 거란의 침공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발해의 멸망은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를 촉발했고, 이후 거란과 고려가 이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